Outlaw Country

Music History 2010. 1. 11. 17:41 |

(이글은 위키피디아의 outlaw country 페이지를 일부 수정 보안. 그리고  의역한 글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Outlaw_country#The_rise_of_the_outlaws



아웃로우 컨트리는 60년대 후반과 70년대(몇몇 경우들에서는 80년대 조차)전반에 걸쳐 컨트리 뮤직에 있어서 중요한 하나의 트렌드였으며 흔히 그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과 그 분야에 종사 하사는 사람들에 의해 간단한게 "아웃로우 뮤직이라고도 불려져 왔다. Johnny Cash, Waylon Jennings, Merle Haggard,David Allan Coe and his Eli Radish Band, Willie Nelson,Kris Kristofferson, Hank Williams Jr., and Billy Joe Shaver 와 같은 그들 스스로 "아웃로우"라고 선언한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 되어져 왔다. 내쉬빌 사운드는 천천히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결국 많은 지역에서 영국의 혁명적인 팝문화와 합쳐지고 있었다, Charley Pride,Conway Twitty와 같은 새로운 아티스트들은 내쉬빌 사운드의 진부함을 깨뜨리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아웃로우 운동이 일어난 배경에는  Jimmie Rodgers와 같은 올드 컨트리 연주자들의 음악. 그리고 그의 계승자들인 Hank Williams, George Jones 와 Lefty Frizzell에 같은 음악들 ,  다듬어지지않은 Honk Tonk Sound를 좀 더 부드럽게 다듬은 Chet Akins와 같은 프로듀서에 의해 크게 발전되어졌지만, 이미 진부해져 버린 Nashville Sound에 대한 반발에 의해서 생겨난것이라고 볼 수 있다.

 - Seeds and The Rise of Outlaws

아웃로우 운동의 뿌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아웃로우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컨트리 스탠다드곡들의 블루지 커버버전이었다. 그러나 큰 반향은 Waylon Jennings가 그 자신의 레코딩 권리를 확보 한 후에 있어났고. 내쉬빌사운드에 맞서는 경향이 있었다
1960년대의 10년동안은 거대한 변화의 시기였고, 60년대 음악을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만들었다. The Beatles, Bob Dylan, the Rolling Stones 등 그들을 따르던 추종자들이  과거 아티스트들이 해왔던 전통적 역활이나 답습에서 벗어났다, 그들 스스로의 하나의 음악적 재료가 되어 창조적으로 앨범을 만들었고,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던 것을 따르기를 거절했다,  같은시기에 컨트리 음악의 주류였던 내쉬빌 사운드는 정형화된 장르로 기울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내쉬빌이 컨트리뮤직을 촛점으로 계속 이어가는 동안에, 다른 한쪽 아웃로우의 중심에선 Lubbock, Tulsa and Austin 지역을 포함시켜 나갔다.



Outlaw Country라는 용어는 Lee Clayton가 쓰고  Waylon Jennings가 노래를 부른 1972년 앨범 "Ladies Love Outlaws"에 수록된 노래에서 유래된다. Gram Parsons & The Flying Burrito Brothers를 처럼 내쉬빌 사운드를 밀어낸 깔끔한 컨트리 가수들과는 대조적으로, Outlawer들은 머리가 길고 데님과 가죽옷을 입은 히피들처럼 보이는 가수들을 연상시켰다. 이 가수들의 성공은 컨트리 뮤직에 순수함을 회복시키고 생명력을 주었다. 노래들은 술, 마약, 근면한 남자들과 싸구려 술집의 영웅들에 관한 거였다. 음악은 락앤롤 같은 거였고 백그라운드엔 현악기가 없었다. 그 밖에도 The Marshall Tucker Band, David Allan Coe and The Charlie Daniels Band는 좀더 전통적인 사운드들의 목록들을 구축해 갔다, 이런한 남성 그룹들은 후에 아웃로우들로 언급되지며 이것은 컨트리 뮤직사에 있어서 중대한 성격으로 정의되어 지기도 한다.

Jennings and Nelson이 전형적인 Outlaw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에 아웃로우 정신을 불어넣은 많은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움직임에 의해 경력이 부활된 Jennings and Nelson이 내쉬빌 베테랑이며, 내쉬빌 프로듀서들을 향한 공격의 최전선에 서기 위해 텍사스에서 발생되고 있던 에너지를 끌어들였다고 언급해왔다. 특히 Jenning는 그의 레코드 회사로 하여금 그 자신이 스스로 앨범을 프로듀서 하도록 했다.
1973년에 그는 Lonesome, On'ry and Mean를 프로듀스했다. 테마송은  결코 주류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던, 송라이터이자 연주자인 Steve Young에 의해 지어졌고 그의 노래들은 아웃로우 스타일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Jennings의 후속 앨범은  Honky Tonk Heroes였고 송라이터는 텍사스주 출신  Billy Joe Shaver였다.
Steve Young처럼 Shaver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의 1973년 앨범 "Old Five and Dimers Like Me"는 아웃로우 장르에서 컨트리 고전으로 여겨진다.

Outlaw 운동의 중심에 있는 또 한명의 아티스트인 Nelson은 1933년 텍사스 에봇 출신으로 부모들의 별거후 조부모의 슬하에 길러진다, 50년초 공군에서 해직 당한 후 Fort Worth station 방송국에서 컨트리쇼 진행자 직과 밤엔 그 지역 홍키통키 뮤지션으로서의 두가지 일을 겸하면서 그는 최선을 다해 송라이터로서 실력을 갈고 닦어갔다. 내쉬빌에서 송라이터로서 Willie Nelson의 경력은 1960년대 후반에 정점에 이르렀다. 그의 "Crazy"는 Patsy Cline(여성싱어) 로서는 큰 히트를 쳤지만, 가수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텍사스로 돌아가기 위해 1971년에 내쉬빌을 떠났다. Austin에서 그가 만난 뮤지션들은 아웃로우 장르로 성장해 가던 컨트리 음악에 영향을 끼친 포크락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Jerry Jeff Walker, Michael Martin Murphey and Billy Joe Shaver 부류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연주하는 것은 그의 장래 경력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 동시에 넬슨은 자기 자신을 새롭게 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또 다른 중요한 주도층들은 오스틴과 로복에서 작곡하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Butch Hancock, Joe Ely and Jimmie Dale Gilmore는 The Flatlanders를 조직했고 많은 앨범을 판매하지는 못 했지만 계속해서 연주를 했다, 이 그룹의 시작멤버들은 각자가 아웃로우 장르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다른 택사스 출신들 Townes Van Zandt, Steve Earle and Guy Clark 은 그들의 음악들과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아웃로
우를 발전시켜왔다

 - Women Outlaws(여성 아웃로우들)

Jessi Colter의 75년 앨범 "I'm Jessi Colter"는 그해 그녀의 빅히트곡 "I'm Not Lisa"와 후속곡 "What's Happened to Blue Eyes."가 포함되어 있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 100만장이 팔렸다, 아웃로우 컨트리가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할지라도, 몇몇 여성 싱어들은 그들 자신을 아웃로우로 여기며 컨트리음악에서 음악적 경력을 쌓아나갔다, 컨트리 음악에서 유일하게 두명의 중요한 여성 아웃로우 스타가 있다: Jessi Colter and Sammi Smit 제시콜터는 아웃로우 선구자인 Waylon Jennings의 아내였다, 1968년에 그와 결혼했고 70년 중반에 솔로로서 음악적 경력을 추구해갔다, 그리고 그 즉시 그녀 자신이 직접쓴 타이틀곡 "I'm Not Lisa"를 팝챠트 4위, 컨트리 챠트 1위에 등극 시킨후 아웃로우 지위를 얻어냈다, 그녀의 75년 앨범 "I'm Jessi Colter"는 선술집으로 보여지는 곳에서 피아노위에 그녀의 한팔을 올려 놓은채 앉아 있는 Colter의 모습은 그녀의 아웃로우의 많은 면면을 보여줬다.그녀의 남편과 같이 컴필레이션 앨범에 포함되었을때 Colter는 공식적으로 아웃로우 지위를 얻었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그리고 의미있는 큰 성공을 했고 많은 상을 받았다.

제시콜터외에, 아웃로우에서 성공을 이뤘낸 또다른 여성이자 콜터와 경쟁적 관계에 있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싱어인 Sammi Smith가 있었다. 그녀는 현대삶의 진솔함을 얘기하거나 위험성을 언급하는 노래를 부르는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녀의 음성은 그녀가 명성을 얻기전 부터 선술집에서 허스키하게 노랠불렀다, 1971년 그녀는 Kris Kristofferson의 타이틀곡인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을 섹시하게 녹음했고 이것은 아주 큰 성공을 이루냈다, 이곡은 그녀에게 컨트리 차트 1위를 안겨 줬으며 그녀를 크로스오버 스타로 만들어 줬고, 팝챠트 8위까지 올랐다, 이 곡은 1972년 그래미 어워드 최고의 컨트리 여성보컬상을 그녀에게 안겼다, 텍사스로 이주후 그녀는 공식적으로 아웃로우가 되었고 윌리넬슨과 함께 절친한 친구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매년  Willie's July Picnic(공식적인 행사인거 같음)에 참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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